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유전] 가족은 선택할 수가 없다. 진짜 공포는 이것!

by mommics 2022. 5. 25.

영화 유전 포스터

1. 영화 유전은 오컬트 공포 영화일까요?

 고립된 현대 가족 사회에서 오컬트 미학의 공포를 구현한 뛰어난 수작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적일까? 
덜 비극적일까?"

- 영화 『유전 대사 중 -

 

지금 소개하는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유전Hereditary은 특히 서양문화의 오컬트 주술을 다룬 것으로 그 표현의 강도가 참혹하고 센 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혹시라도 평소 무서운 공포 영화를 잘 못보시는 분들이라면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유전이라는 이 영화는 <오컬트 공포>라는 장르를 빌어 상당한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는 그러한 수작으로선 추천드릴 만한 공포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이 유전이라는 점부터 매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과연 무엇이 <유전>되고 있다는 것일까요?

 

영화의 무대는 어느 한 가족이 사는 공간(이 공간은 첫 시퀀스에서 보여주듯이 감독이 창조한 무대로서의 가족 공간)이며, 이들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야기가 서서히 전개됩니다. 이미 돌아가신 그 할머니는 살아생전 비밀이 많았었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 어떤 무언가를 물려주었습니다. 바로 이 상속받은 유전(hereditary)의 내용이 이 영화에 대한 핵심 이해를 차지하고 있다.

 

장례를 치룬 그 할머니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애니의 엄마였습니다. 애니는 슬하에 딸 찰리와 아들 피터를 각각 두면서 남편 스티브와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딸 찰리와 아들 피터는 할머니의 손자가 되며, 결국 할머니-엄마-,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가 되는 셈입니다.

 

찰리와 피터의 엄마로 나오는 애니는 미술적 재능이 있는데 어린 딸 찰리도 그리고 만드는 재능을 지닌 아이로 보이지만 지극히 정서가 불안하고 특정 음식에 대한 아나필락시스(아나필락틱 쇼크)라는 알레르기 반응을 갖고 있습니다. 찰리의 오빠 피터는 마리화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십대 청소년 학생입니다. 애니의 남편이자 집안의 가장인 스티브는 이들 가족 구성원들을 걱정스런 눈으로 보면서 그래도 가족들을 챙기려하나 역부족인 듯 보입니다.

 

영화의 전개는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저마다의 불안와 각자의 해소 방법들을 드러내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애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유족들의 슬픔을 나누는 모임에 참여하고, 딸 찰리는 여전히 계속 이상 증세를 보이며, 아들 피터는 친구들과의 마리화나 파티를 찾습니다. 아빠인 스티브는 그나마 가족 중에선 가장 차분한 이성적 성격을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를 해소활 방법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언뜻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것 같지만 그 진행은 마치 엄청난 해일을 그 밑변에 감춘 거대한 파도처럼 깊숙하게 점점 더 장악해 들어갑니다. 이들 가족은 거대한 살얼음판을 밟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측하기 힘들며 매우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진행으로, 후반부에선 거의 쓰나미급 재앙으로 치닫습니다.

 

영화는 죽은 영혼을 불러들이는 의식 뿐만 아니라 어떤 비정상(paranormal) 현상과 환각을 갖는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포스런 오컬트 영화로서 표현되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신화적 주술적 악령을 드러내기 위한 오컬트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단순하게만 보면, 이 영화는 지옥의 8대 천왕에 속하는 파이몬(King Paimon)이 머물만한 어떤 숙주를 찾는 영화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 대마왕 악령은 자신의 거처할 숙주로는 인간 남자를 선호하며, 페이몬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한테는 지식, 재물, 친한 벗들을 내려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은 이 같은 오컬트적인 장르적 재미도 충분히 선사하는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오컬트 장르를 빌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거대한 공포는 다름 아닌 가족의 해체와 퇴행에 있습니다. 물론 영화 유전은 겉보기엔 악령을 믿는 종교에 대한 유전적 상속을 가족들이 겪는 영화로서 볼 수 있고,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 해설도 그렇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이 영화를 조금 달리 보고자 합니다.

 

영화 유전 포스터

 

2. 가족 간의 불통과 단절에서 찾은 악령과 공포의 실체

 

이 영화 유전은 가족이 건강한 관계가 아닌 퇴행으로 떨어지며 붕괴되는 과정들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결국 공포라는 장르를 빌고 있는 가족에 대한 영화로 보이며, 실질적인 공포는 진정한 대화 소통을 나누지 않는, 가족 간의 불통 사태라는 점이 가장 큰 핵심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 소통이 단절된 고립된 관계라는 점은, 이 영화 처음 부분에서 애니가 들려준 추도사 내용에서부터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부터가 비밀이 많았었고 가족과 제대로 된 소통 관계를 갖지 못한 채로 심지어 해리 증상까지 보일 만큼 병리적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엄마 애니는 몽유병 증상이 있는데다 딸인 찰리와 아들 피터에게 대하는 방식들도 강압적입니다. 실제로 엄마의 이 강압은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비극을 촉발시켰죠. 게다가 엄마인 애니는 자신의 아들 피터를 낳기 싫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 속내를 말하지 않고 살아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들 피터는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눈치를 볼 만큼 그 역시 속내를 억누르며 살아왔었습니다.

 

딸 찰리는 평소 틱tic 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일 만큼 심히 불안하고 심각한 땅콩 알레르기 쇼크 증상을 갖고 있으며, 비밀이 많았던 할머니의 양육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보입니다. 창문에 부딪혀 죽은 새의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서 아무렇지 않게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어린 딸 찰리의 모습은 분명 일반적인 행동으로 보긴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엄마 애니는 할머니가 딸 찰리를 이뻐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딸 찰리는 할머니는 손녀가 아닌 손자를 원했다는 말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도 이들 가족들 간의 심각한 불통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차분한 이성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춰진 아빠 스티브도 그 나름 가족들을 걱정하고 챙기는 노력들은 하지만 이들 간의 그 심각한 정도에 대해선 둔해보이거나 우유부단하게 그려지면서(식탁에서의 엄마와 아들의 싸움도 뒤늦게 말리죠) 결국은 비극을 맞게 됩니다. 정신 심리치유 상담도 진작부터 했어야 했지만 때늦은 처사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진짜 유전된 공포는 <악령>이 아니며 실은 선대의 가족들에서부터도 보여줬었던 <심각한 가족 간의 불통 및 단절>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돌아가신 그 할머니도 어쩌면 선대의 불통스런 가족 속에서는 고립된 외로움을 죽은 가족들의 영혼을 불러내는 오컬트적인 주술로 채우려 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모든 탄생은 그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태어나는 것이기에 폭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 포스터의 "가족은 선택할 수가 없다"는 문구가 잘 말해주듯이, 따라서 우리는 좋은 가족, 나쁜 가족을 임의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대화 소통이 단절되는 불통스런 가족 관계에 놓일 경우, 일방적 훈계와 억압, 강요와 희생이 강조되기 쉽습니다. 할머니는 유품으로 남긴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이유나 맥락도 알려주지도 않은 채 나중에 큰 보상이 있을 거라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희생하기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화 유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더 이상 <안전한 의미로서의 가족>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그러한 신화를 철저히 해체시킵니다. , 우리의 가족이 안전한 곳이라는 관념도 결국 신화적 믿음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달리 말하지면, 이 영화 유전>은 실제로는 현대 사회 가족이 갖는 대화 소통 단절로 인한 <이상 증상들><불안증들>을 오컬트 공포 영화의 장르를 빌어서 그와 같은 가족 신화를 폭로 해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이 유전3대를 거쳐서 상속되는 정도가 아닌 오늘날 현대 사회의 많은 가족들이 겪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상속시키는 유전 질환이며, 거대한 우리 사회가 이전 사회로부터도 계속 물려받고 있는 가장 실질적인 공포와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인 것입니다.

 

서로의 대화가 겉돌고 이미 고립된 구성원들 간의 집합에만 불과하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혈연으로서만 가족일 뿐,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맹목적인 애착 관계만 남아 있는 가족은 훨씬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 소통은 언뜻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협력과 신뢰의 시간을 요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도 감정의 예민함과 섬세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종종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가족 간의 불통 및 단절, 그것은 결코 개인사적인 비극이 아니며 아주 오랜 습행처럼 함께 있어왔던 인류사적 비극이며, 지금까지도 우리를 종종 비극적 파국으로 이끌었던 <악령과 유전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실제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불안과 공포를 낳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유전>을 끊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 <유전>을 자꾸만 또 계속해서 물려주고 있진 않은지요? 영화 유전을 본 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