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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詩)] 시를 쓴다는 것은 고통을 함께 끌어 안는 것

by mommics 2022. 5. 23.

 

영화 시 포스터

 

1. 삶은 아름답다...

 

삶은 아름답다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박하사탕의 대사이기도 한데, 그는 박하사탕에서도 그리고 전작 밀양에서도 드러낸 바 있듯이, 끊임없이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 또는 구원을 궁극적인 주제로 잡고서 리얼리즘 문학의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영화로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 ()또한 전작의 주제와 비슷하게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 및 구원에 대해 얘기합니다. 영화 <>'미자'라는 할머니의 시선으로 주변 일상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는데, 어찌보면 심심한 풍경들이지만 이창동 감독은 그 속에서조차 녹록지 않은 이야기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는 일상 생활에서 가끔 명사를 깜빡깜빡하기도 하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이를 극복하고자 배드민턴 운동과 시 쓰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녀는 꽤나 패션 감각이 있는 멋쟁이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녀가 시를 쓰고자 하는 일과 그리고 자신의 중학생 손자가 관여된 십대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서로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영화 초반, 피해자였던 10대 소녀는 강물에 뛰어내려 자살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졸지에 가해자인 중학생 손자로 인해 미자 할머니는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을 그냥 돈으로 합의해서 마무리하고자 하는 가해자 학부모들 모임에 부득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웬지 그들과 뒤섞이지 못한 채 또 한편으로는 계속 시 쓰는 일에 몰입합니다.

 

하지만 순수 소녀 같은 할머니 미자는 시를 쓴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시간이 갈수록 절감하죠. 그러다가 시 강좌에서 김용택 시인으로부터 시를 쓰기 위해선 <본다>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그녀는 주변의 일상들을 여기저기 보기 시작하면서 시를 쓰는 게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점점 더 체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현실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순수 소녀의 마음으로 대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위험스럽고 정말 추악하리만치 아름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본다>는 것은 물론 <관찰>을 의미합니다.

 

영화 시의 장면들

 

죽은 소녀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도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중학생 손자를 보며, 중풍병 노인을 간병하다가 그 노인의 즉물적 욕망을 겪으면서, 그리고 시 낭송 모임에서 시 보다는 음담패설이나 해대는 남자를 보면서, 그녀는 이쁘지 않은 세상의 현실들을 점점 발견해 들어갑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점점 더 삶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타자의 고통 역시 좀 더 이해하며 끌어안고자 하는 시인으로 점점 되어갑니다. 중풍 노인의 욕망을 이해하려 한 것도 그렇지만 역시 그 절정은 죽은 소녀의 한이었습니다.

 

끝내 피해자 부모의 눈길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여전히 피자를 맛있게 먹으며 반성하지 않는 중학생 손자를 위해서도 마지막 정리와 결심을 합니다.

 

마치 제스스로 몸을 땅에 던져 깨어지고 밟히는 살구처럼 그녀 또한 흐르는 강물에 자신의 생을 내던지며 속죄합니다. 그럼으로써 창작된 그녀의 마지막 불꽃,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가 마침내 탄생됩니다. 아네스는 성당에 다녔던 죽은 소녀의 세례명이기도 합니다.

 

2.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고통을 함께 끌어안는 과정을 동반하는 것!

 

"살구는 스스로 제 몸을 땅에 던진다.
깨어지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 "

- 미자의 대사 -

 

이창동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에는 항상 알게모르게 고통도 함께 끌어안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 강좌 수강생들 역시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회고할 때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잖아요. 그중 한 수강생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이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괴로움도.. 아름다워요"

 

이는 개인적으로도 평화라는 느낌에는 언제나 비극에 대한 감각도 함께 내포되어 있음을 언급한 저 유명한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통찰마저 떠올리게도 해줍니다. 시를 쓴다는 건, 곧 현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이를 초월(超越)하는 포월(包越)의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네 삶의 가장 추악하고 힘들며 아픈 부분들을 외면하거나 혹은 삶의 진실과 고통을 직시하지 않고 쉽게 돈으로든 뭐든 무마하고자 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러한 고통마저 품어안고서 함께 이를 극복해가고자 하는 과정 그 자체.. 적어도 이창동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삶의 구원과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3. 삶의 고통과 구원 그리고 아름다움..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 아네스의 노래 -

 

이러한 작가적 의식은 전작 밀양에서도 보여줬던 것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습니다. 영화 밀양의 첫 시작 장면은 하늘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질퍽한 개숫물 바닥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결국 고통 어린 삶의 현실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의 첫 장면은 흐르는 강물이었고, 마지막 장면 역시 흐르는 강물이었습니다. 물의 이미지는 죽음을 끌어안고서 모든 것을 씻어내는 죽음과 치유의 이미지이기도 한데, 이는 어쩌면 고통의 윤회와 치유로서의 구원해방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 속에 자신의 몸을 산화시키며 속죄함으로써 결국은 진정 아름다운 시가 세상 안에 꽃피게 된다고 말합니다.

 

영화 <>는 마지막에 미자의 목소리와 그리고 연이어 죽은 소녀의 목소리로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두 여인이 마침내 하나가 되어 아네스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는 사뭇 종교적이기까지 할만큼 깊은 시선들을 노년의 일상적 풍경 속에 무심하게 응축시켜 놓은 영화로서 영화를 다 본 뒤에는 문득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그러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이 작은 사건(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사건) 안에 우리네 삶의 극렬한 추악함에서 승화된 아름다움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들을 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초상들을 집약적으로 녹여 놓은 예리한 영화가 바로 이창동 감독의 <>입니다.

 

몸의 삶을 관찰하며 삶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승화하기.. 아름다운 구원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

-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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