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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불가항력적인 불행들의 엄습 - 리뷰 1

by mommics 2022. 5. 15.

 

 

1. 불가항력적인 불행들, 그것이 지옥

 

메가 히트 작인 <오징어 게임>에서 보듯이 최근 한국 콘텐츠의 강세가 OTT 시장에서도 매우 두드러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된 웹드라마 <지옥>(연상호 연출)은 웹툰 원작에 기반한 것인데 필자는 아직 웹툰을 보지 않은 채 드라마만 보고 쓴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긴 글에 익숙치 않은 분께는 양해를 바라며, 이 글이 어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도 미리 주의드립니다.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처음에 봤을 때 드라마 <지옥>의 초반부 내용은 사실 필자에게 매우 황당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초자연적 존재가 몇날 몇시에 당신은 지옥에 간다고 <고지>한 후 어디선가 불가항력적인 초자연적 존재들이 해당 그 시각에 차원 이동하듯이 나타나 그 지옥 고지를 받은 해당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설정은 그 자체로 판타지처럼 여겨졌기에 작가나 감독이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이런 스토리들은 내용이 무책임하게 그냥 산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 존재들의 사람죽이기' 장면 캡쳐 ⓒ넷플릭스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 지옥 고지로 사람을 죽이는 설정은 워낙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다 보니 이를 해석하여 대중의 권력을 얻게 되는 새로운 종교 단체가 일어나고 몇몇은 아예 종말의 심판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신의 역할을 대신해 인간에게 형벌 심판을 주는 폭력을 일삼기도 합니다.

 

아마도 더 일찍 알아차리신 분들도 있겠지만, 필자가 약간의 간파를 하게 된 것은 정작 아기한테 지옥 <고지>가 통보되면서입니다. 아기한테 지옥을 통보하는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할까요? 따라서 그동안의 <불가항력적인 초자연적 존재들의 사람 죽이기>는 결국 자연 세계 안에 설명되기 힘든 <불가항력적이고 무작위적인 불행/재난/재해/재앙>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부조리>에 속합니다. 이런 이해불능의 참사의 발생들에 어떠한 합리적 이유를 찾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것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거대한 변화들로부터 받게 되는 <무차별적인 재앙의 세례>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의 기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뿐만 아니라 일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던 독실한 종교 신앙인들도 <바이러스 감염>으로 얼마든지 병들거나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느닷없이 닥치는 여러 가지의 <불가항력적인 불행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2. 세상의 온갖 불행들은 신의 지옥 심판인가?

 

그런데 세상에서 권력을 확보하려는 어떤 종교나 조직 단체들은 이러한 재앙들을 일종의 <악에 대한 형벌> 또는 <종말 심판>으로 해석하면서 그 권력을 유지 또는 확장하고자 이를 정당화하려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배 권력적 해석>의 수행입니다. 극 중의 사회학 교수의 몇 가지 언급들은 분명 작가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우리는 기존 종교에서도 세계 안에 발생 된 여러 불행스러운 재해나 재난들을 마치 <신의 심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들은 매우 비일비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유명 부흥사 팻 로버트슨 목사는 20101월 아이티 대지진을 "악마의 저주"라고 언급했고, 20019·11 사건 때는 "무신론자, 낙태주의자, 동성연애자들을 벌하는 하나님의 채찍"이라고 했습니다우리나라의 고 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2011년 일본 대지진·쓰나미 재해에 대해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는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또한 대형교회의 김홍도 목사(금란교회)2005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의 쓰나미를 "크리스마스 즈음에 놀러 간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 뉴올리언스 카트리나에서 발생한 허리케인을 두고서는 "동성연애, 호모섹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한 바 있습니다.

* 뉴스 출처 : NEWS M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1)

 

그러한 신의 지옥 심판은 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어떤 일관성을 띨 수 있어야 하기에 필히 어떤 죗값을 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관성 없는 신의 심판>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은 지옥 형벌로! 선은 천국 보상으로!> 같은 자신들이 믿는 <정의> 또는 <공정성> 개념이 형성됩니다.

 

사실상 선과 악의 대립적인 이원적 구도에서 나오는 <보상과 처벌의 도덕 관념>은 도덕발달론에서 보면 여러 도덕 관념들 중에서 낮은 등급에 속합니다. (콜버그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의 도덕발달론 참조).

 

3.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독교 신학의 난제 중에는 신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한 존재라면 어떻게 이 세계 안에 악과 고통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만일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한 존재라면 세계 안에 악이 승리하고 있는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선 그 궁극적인 책임성에서 벗어나기 힘든 딜레마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선함과 전지 전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종교 신앙인들은 그래서 이 딜레마를 벗고자 온갖 정당화의 해석을 가하기도 합니다.

 

구약성서에도 아기와 여자까지 남김없이 쳐 죽여야 한다는 신의 명령을 받아 호흡하는 자들을 모두 말살시켰음을 정당화한 구절들이 있습니다.(삼상15:1-3, 2:31-35, 6:16-21, 10:39-40, 11:11-15). 성경은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성서무오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구절들은 매우 이해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구절들을 놓고선 이를 정당화하려는 여러 해석들을 시도하기도 한다(예컨대 아기와 여자를 살려두었다면 계속 우상숭배를 했었다거나 또는 다른 이들이 노예로 삼기 때문에 어차피 죽였어야 했다는 등의 억지 해석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이런 이해불능의 사건이나 구절들에 대해선 회피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신앙의 질서적 체계 하에선 이런 점들은 온전히 해석하기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 기존 신앙의 질서적 체계마저 심히 혼란스럽게 만들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들은 장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만의 해석의 원칙과 표준을 마련하여 이것을 벗어나면 잘못된 이단으로 구별시켜 종종 적대적으로 취급해왔습니다.

 

따라서 필자에게 <지옥>이라는 이 드라마가 흥미로웠던 점은, 그러한 신의 질서적 가치를 교란시키는 <혼돈><무질서>야말로 오히려 <참된 선()으로 가는 길>로 여겨지는 그 역설에 있습니다. 이것은 <신의 질서는 선하고, 이를 교란시키는 혼돈과 무질서는 악>이라는 교의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반역에 속합니다. 물론 보다 정확히는 <해당 종교 단체가 믿는 신의 질서는 선하다>는 것이어서 결국 문제는 발생된 사건이라는 드러난 현상들을 놓고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그 해석 여부가 핵심 관건일 것입니다.

 

(2부에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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