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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라진 시간』 리뷰, 불교 없는 강렬한 불교 영화

by mommics 2022. 5. 30.

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1. 영화 소개

  • 개봉 : 2020.06.18.
  • 등급 :15세 관람가
  • 장르 : 미스터리, 드라마
  • 러닝타임 : 105분
  • 배급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감독 : 정진영
  • 출연 : 조진웅, 배수빈

 

 

 

 

"다들 어쩔 수 없잖아요. 울지 마요.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니까"
                                    - 극 중 대사 - 

 

2. 끝없는 아픔과 고통의 굴레, 윤회

 

정진영 감독의 『사라진 시간』 은 상당히 기묘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연 불교 영화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불교 관련 요소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선 온통 불교적 메시지로 가득 채운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영화의 포스터 글귀부터가 잘 말해주듯, "내가 사라졌다", 즉 불교 메세지인 "무아(無我)"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된 골자는 형사였던 주인공이 갑자기 어느 순간 교사로 뒤바뀌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형사에서 교사로 완전히 뒤바뀌는데 주인공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머물러 상주하는 나>에 대해 집착하면 할수록 영화의 주인공은 자꾸만 힘든 곤란을 겪습니다. 정체성 분열은 영화 초반의 교사 아내와 영화 후반에 주인공과 인연을 갖게 된 뜨게질 강사의 아픔에서도 드러납니다. 둘 다 동일한 분열 증상...

 

그래서 영화는 고통의 윤회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의 교사와 아내가 나눈 대화가 영화 막판의 둥근 노천탕에서 다시 등장하여 똑같은 대사를 읊습니다. 어쩌면 교사가 된 주인공과 뜨게질 강사는 영화 초반의 고통을 겪던 부부 역할로 돌아갈지도 모를 암시까지 남겨놓습니다. 그야말로 무한반복의 굴레와 같은 윤회의 삶인 것이죠..

 

무엇보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도 똑같습니다. 주인공은 계속 정처없이 헤매고 있는 중이다... 단지 흑백에서 컬러로만 바뀌었을 뿐. 현실이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일테죠.

 

또한 뜨게질 실로 연결된 교사의 아내의 병과 영화 후반의 뜨게질 강사의 병은 동일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둘 다 남모를 비밀스런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아는 병이기도 했습니다.

 

그 병이란 밤엔 다른 사람이 되고 아침에 깨어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분열 증상.. 이를 반복하는 삶 역시 고통의 윤회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 역시 형사에서 교사로 완전히 바뀌는 바람에 이 아픔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아픔을 공유하면서 이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깨달음, 혼자만 아프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자각

이 영화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이를 해명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 인물과 연결선들은 어떤 의미에서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하지 않게 서로 얽혀 있습니다.

 

아마도 감독은 서로의 관계들이 불교적 의미의 인연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에만 좀 더 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선 작가인 감독은 거의 관객을 고려하고 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불교의 메세지를 잘 모르고서 이 영화를 접하게 된다면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로 여겨질 것으로 봅니다. 영화는 정말 갑작스럽게 뚝 끊어지듯 끝나서 어쩌면 어안이 벙벙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우리의 삶을 불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온통 불교적 메세지와 이를 상징하는 은유적 대사와 장면들로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필자 나름으로 굳이 건져본다면.. "나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의 멍에와 같은 아픔들에 공감하며 살자"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의 주인공의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깨달음의 법문과 같이 다가옵니다..

 

"다들 어쩔 수 없잖아요. 울지마요.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아픔과 고통.. 하지만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도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자체가 역설적으로 생의 활력, 삶에 대한 힘이 된다는 점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선 영화가 끝이 나고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독백처럼 나옵니다.

 

"참 좋다"

 

이제 내가 사라지고 타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보살(菩薩)이 됩니다.

 

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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